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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우리.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조선왕조실록은 조선왕조의 시조인 태조로부터 철종까지 25대 472년간 ( 1392 ~ 1803)의 역사를 연월일 순서에 따라 편년체로 기록한 책이며 총 1,893권 888책으로 되어있어 가장 오래되고 방대한 양의 역사서 이다. 조선왕조실록은 조선시대의 정치,외교,군사,제도,법률,경제,산업,교통,통신 등 각 방면의 역사적 사실을 망라하고 있어 세계적으로 그 유례가 없는 귀중한 역사 기록물이다. 또한 조선왕조실록은 그 역사기술에 있어 매우 진실성과 신빙성이 높은 역사기록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조선왕조실록은 정족산본 1,181책, 태백산본 848책, 오대산본 27책, 기타 산엽본 21책을 포함해서 총 2,077책이 일괄적으로 국보 제 151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1997년 10월에..
백제의 시조 온조왕 백제를 세운 온조왕은 고구려의 시조 주몽의 아들이다. 주몽이 동부여에서 탈툴하여 졸본천에 당도했을때, 그 곳 졸본부여 왕에게는 딸이 셋 있었다. 왕은 주몽을 보자 보통 인물이 아님을 알고는 둘째 딸을 주어 사위로 삼았다. 주몽은 그 아내에게서 두 아들을 낳았는데 첫째가 비류요, 둘째가 온조였다. 비류와 온조는 , 오간, 마려 등의 10여 명의 신하와 더불어 고구려를 떠나 남으로 내려갔다. 많은 백성들도 그들 형제를 따랐다. 비류의 백성까지 합세한 온조는 점차 세력이 커져갔다. 그러자 온조는 나라 이름을 백제로 고쳤다.그리고 그해 5월 동명성왕, 즉 아버지의 사당을 세웠다. 온조왕은 왕위에 있는 46년동안 많은 영토를 확장했다. 기원 전 5년 에는 도읍을 남한산으로 옮기고 나라의 기틀을..
[얼음 석빙고]얼음이야기 나라에서 나눠준 얼음 냉장고와 같은 식품보관장치가 없던 시기에 얼음은 몹시 요긴하고 귀한것이었다. 우리 선조들은 추운 겨울날 꽁꽁 언 얼음을 깨어 특별히 만든 얼음창고에 저장했다가 여름에 쓰곤했다. 고구려에서는 유리왕때 장빙고를 만들었고, 신라에서는 지증왕때부터 얼음을 저장해 두었다가 썼다. 얼음을 녹지않게 잘 보관하고 또 필요할 때 나눠주는 일은 대단히 중요한 국가 행사 가운데 하나였다. 신라에서는 서울경주에 돌로 석빙고를 지어 얼음을 보관하는 한편, 빙고전이란 관부를 두어 얼음에 관한 일을 맡아보게 하였다. 지금의 경주에 남아있는 석빙고는 조선 영조때 개축한 것이다. 고려 때는 빙고 문을 열기 전, 돼지를 잡아 제사를 드렸으며 조선에서도 해마다 섣달에 사한제를 올리고 한강의 ..
[강감찬 귀주대첩] 귀주대첩 강감찬 왕건이 고려를 세운지 얼마 안되던 948년, 지금의 경기도 시흥 땅인 금주에 한 아이가 태어났다. 그는 자라면서도 키가 작고 초라한 모습에, 보는 이의 웃음을 자아낼 정도로 못생긴 외모였다. 그가 바로 고려의 명장, 강감찬 이다. 983년에 과거에 급제한 강감찬은, 주요 벼슬을 거쳐 지금의 교육부 차관인 예부시랑이 되어 나라의 교육과 외교일을 맡고 있었다. 그 무렵 거란족은 서희가 여진족을 무찌르고 세운 두만강 주변 여섯개의 성(강동6주)을 내놓으라고 끈질기게 요구하던 중이었다. 1018년 12월,거란은 소배압을 대장으로 하여 10만 대군으로 하여금 고려를 치게 했다. 거란의 10만 대군은 얼어붙은 압록강을 건너 단숨에 밀고 내려왔다. 소배압은 위주에서 크게 패했다. ..
[최치원]신라의 대문장가 최치원 고운 최치원은 신라 현안왕 1년인 857년봄에 사량부에서 태어났다. 어려서 부터 학문을 좋아할 뿐만 아니라 뛰어나게 총명하여 주위 사람들은 놀라게했다. 그는 열두살이 되던해에 무역선을 타고 당나라 유학길에 올랐다. 최치원은 이를 악물고 공부하여 6년만에 과거에 급제하였다. 최치원은 학자로서 보다는 문장가로 더 뛰어난 재주를 보였다. 틈틈히 많은 시와 수필을 썼다. 문장도 좋을뿐만 아니라 벼슬가로써도 성적이 좋아 벼슬이 올라가면서 자금어대를 받았다. 금실로 수놓은 고기 그림이 있는 주머니, 자금어대는 당나라 황제가 내린 것으로, 이것을 찬 사람은 궁궐을 마음대로 드나들 수가 있었다. 그만큼 황제의 신임을 얻은 것이었다. 최치원은 신라 사람이었지만 당나라 사신으로 신라를 방문..
[고구려 광개토 대왕]고구려의 기상 광개토 대왕 고구려, 백제, 신라 등 세나라로 나뉘어 서로 세력 다툼을 벌이던 삼국 시대에, 고구려는 가장 북쪽에 위치했다. 그래서 북방민족인 중국 한족과 맞서 싸우면서 성장했다. 고구려는 나라의 모든 영토를 왕이 직접다스리는 등 왕의 권한을 강화하고, 강력한 지도자 밑에서 외부 세력의 침략을 막아 내면서 나라의 힘을 길러갔다. 광개토대왕은 374년에 고국양왕의 아들로 태어났다. 열일곱이라는 어린나이에 고구려의 19대왕으로 즉위한 광개토대왕은 고구려의 영토를 한껏 넓히겠다는 꿈을 가지고 있었다. 광개토대왕의 능숙한 지휘와 지혜로운 작전을 따르는 고구려군은, 바람처럼 말을 달리며 창칼을 휘둘렀다. 고구려의 영토는 북으로 북으로 뻗어갔다. 410년에는 서쪽에 있던 연나라를..
[한반도의 4대 명산]4대명산 한국의 경치로써 대표되는 명산을 손꼽자면 동쪽으로는 금강산, 남쪽으로는 지리산,서쪽으로는 구월산, 북쪽으로는 묘향산을 꼽을 수 있다. 금강산 동서길이 약 40km, 남북길이 약 60km, 면적은 약 530㎢이다. 최고봉인 비로봉(1,638m)을 중심으로 북쪽에는 오봉산·옥녀봉·상등봉·선창산·금수봉, 서쪽에는 영랑봉·용허봉(룡허봉), 남쪽에는 월출봉·일출봉·차일봉·백마봉, 동쪽에는 세존봉 등이 솟아 있다. 1952년 북한의 행정구역 개편 전에는 회양(淮陽)·통천(通川)·고성(高城)·인제(麟蹄)의 4개군에 걸쳐 있었다. 지리산 높이 1916.77m. 신라 5악의 남악으로 ‘어리석은 사람이 머물면 지혜로운 사람으로 달라진다’하여 지리산(智異山)이라 불렀고, 또 ‘멀리 백두대간이 ..
[한국의 절]합천 해인사 경남 합천 가야면 에 위치한 해인사는 삼보사찰 중의 하나인 법보사찰이다. 해인사는 서남향을 한 가람에 가장 높은 지대에 놓인 경판전과 대적광전을 중심 축에 맞추어 배치하고 그 밑에 있는 석탑과 석등 그리고 구광루와 해탈문은 축선을 약간 옆으로 옮긴 위치에 자리하고 봉황문과 일주문은 방향을 약간 바꾼 축선상에 놓인다. [ 출처 - 문화재청] 해인사의 최고 걸작품은 국보 제 32호로 지정되어 있는 고려대장경판이다. 우리가 해인사를 법보사찰이라고 하는 이유도 이 고려대장경인 팔만대장경을 보유하고 있기때문이다. 흔히 팔만대장경이라 불리는 대장경의 정식명칭은 고려대장경판 이다. 고려대장경판을 온전하고 보전하고 있는 일명 장경각이라 부르는 대장경판전은 국보 제 52호로 지정되어 있다. [ ..
[금산사]모악산 금산사 모악산의 정기를 듬뿍 받은 천혜의 터전으로 신비스러울 정도로 사면팔방이 이중으로 둘러싸인 자리에 앉아 있는 금산사는 호남제일의 미륵신앙 도량이다. 금산사는 백제 법왕 원년(599)에 임금의 복을 비는 사찰로 산문이 열리었다. 그러다가 신라 혜공 왕 2년 진표율사에 의해 중창되면서 대가람의 면모를 갖추었다. [출처 - 문화재청] 고려 문종 33년에 다시 혜덕왕사가 절을 중수하여 88당 711칸의 어마어마한 거찰을 만들고 금산 사 역사상 최고의 전성기 를 이루었다. 혜덕왕사 소현은 대각국사 의천의 외숙이다. 동시에 또한 세 누이가 문종의 비가왕의 외속이기도 하였던 외 척으로, 법상종을 중흥한 고려 법상종의 중흥 조이자 금산사의 대중창주였다. [출처 - 문화재청] 조선 선조 31년(15..
[세종 훈민정음]훈민정음 창제 훈민정음이란 백성을 가르치는 올바른 소리란 뜻이며, 조선 왕조 제4대 임금인 세종이 그때까지 사용되던 한자가 우리말과 구조가 다른중국어의 표기를 위한 문자체계여서 대다수 백성들이 배워 사용할수 없는 사실을 안타까워 하여 세종28년(1446)에 우리말의 표기에 적합한 문자체계를 완성하고 '훈민정음'이라 명명하였다. 훈민정음은, 곧 한글은 28자로 된 알파벳으로, 오늘날에는 4자가 안 쓰이고 24자만 쓰이는데, 한국어를 완벽하게 표기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배우기와 사용하기에도 편리한 문자 체계이다. 문자체계 자체로도 독창적이며 과학적이라고 인정되고있어 그 의의다 크다 할수있다. 세계의 많은 민족들이 자기의 언어를 표기하기 위하여 문자를 만들려고 노력하였으나, 한글과 같이 일정한..